COACH 코치 역사 클래식
코치 COACH 라는 브랜드는 굉장히 독특하다고 생각하지 않나요? 유럽 브랜드와 견줄 만한 럭셔리 브랜드라고 생각하는 분도 있고, 저렴한 이미지를 가지고 있는 분도 있습니다. 이 코치의 이미지라고 하는 것은 도대체 어디에서 오는 것일까요? 이것은 코치가 새로운 럭셔리 브랜드의 모양을 만들어 낸 브랜드이기 때문입니다.이 글에서는 이런 COACH 코치의 역사를 들여다보도록 하겠습니다.
원점은 탁월한 장인에 의한 기술
코치는 1941년 뉴욕 맨해튼에서 마일스, 릴리언 칸 부부에 의해 설립되었습니다. 시작 초기에는 맨해튼에 많이 존재했던 창고 공간을 사용해 대기업 제조사로부터의 가죽 제품 생산 청부 공방이었습니다.
계기는 베이스볼 그랩턴 레더
코치를 대표하는 가죽 소재로 '그랩턴 가죽'이 있는데, 이는 1961년 어느 날 칸이 미국의 전통적인 스포츠인 야구를 보면서 느낀 어느 번뜩임에서 탄생했습니다.
연구에 연구를 거듭한 결과 내구성이 뛰어나 사용할수록 부드럽고 유연해지는 그랩턴 가죽 개발에 성공했습니다.
이듬해에는 숙련된 6명의 장인에 의해 그랩턴 가죽을 사용한 컬렉션이 발표되었습니다. 하지만 그 수는 겨우 12개입니다. 장인이 일일이 손으로 정성스럽게 마무리했기 때문에 한정 생산이 된 것입니다.
이 가방이 오래 사용할 것을 염두에 둔 것으로 시리얼번호가 들어간 핸드백은 사용할수록 가죽이 광택감을 더해간다는 초고품질의 컬렉션이 되었습니다.
이 컬렉션은 아메리칸 클래식이라고 불리며 코치 클래식 컬렉션의 원점이 되는 것입니다.
여성을 위한 새로운 스타일의 확립
1962년에는 또 다른 도전을 시도합니다. 당시 인기 디자이너 보니 카신을 코치 디자이너로 모셨습니다. 보니가 여성을 위해 뭔가를 하겠다는 명확한 비전을 내걸고 당시의 실용적이라고 할 수 없었던 핸드백에 혁명을 일으킨 겁니다.쇼핑백에서 영감을 얻은 튼튼한 핸들과 바깥쪽에 동전지갑이 달린 평평한 가방, 일명 '가신 캐리'를 디자인해 유행을 만들어냈습니다.

1973년에는 캐주얼 패션이 대두되면서 젊은 층의 라이프 스타일에 맞춘 '더플 색'을 발표해 그랩턴 가죽의 특성이 충분히 활용된 더플 색상은 폭발적인 인기상품이 되어 코치의 상징이 될 정도였습니다.
여성을 위해 디자인과 기능을 접목한 커신 캐리는 코치의 새로운 스타일을 확립함으로써 패셔너블한 미국 여성의 마음을 사로잡았고, 이들의 패션 아이템에 코치 아이템이 만발한 것입니다.
지방 브랜드에서 미국 전역으로
1980년대에 들어설 무렵 코치는 지금까지 카신 캐리의 활약으로 인해 매우 잘 성장하고 있었습니다. 하지만 실제로는 미국 북동부의 일부 백화점에서만 팔리고 있고 매출도 연간 약 6억엔 정도의 중소기업이었습니다.
프랭크포트가 취한 전략은 판매경로의 다변화입니다. 요컨대 지금까지 일부 백화점이나 전문점에서만 팔던 코치 제품을 더 많은 사람에게 사줄 수 있도록 한 겁니다.
1980년 첫 시작점이 카탈로그 만들기에서 카탈로그를 통해 널리 코치를 인식함으로써 매출 증가로 이어졌습니다.
더 나아가 당시 유행했던 프레피 스타일의 바이블 책 '더 프레피 핸드북'에 코치 백이 실리면서 젊은이들 사이에서 일약 각광받고 있습니다.
한층 더 직영점 전개입니다. 1981년 뉴욕 매디슨 64번가에 직영점을 열었고 크리스마스에는 줄을 설 정도로 성황을 이뤘습니다.직영점이 인기화함으로써 백화점에서의 매출에도 상승효과가 생겨 새로운 발전을 이루었습니다.
1985년에는 창립자인 칸 부부의 은퇴에 의해, 코치는 의류 기업 대기업의 사라·리 코퍼레이션에 매수되어 프랭크 포토가 코치의 프레지던트로 취임해, 새로운 직영점 전략을 추진해 갔던 것입니다.
이러한 프랭크포트의 멀티채널 전략에 의해서 코치는 크게 발전해 갑니다.
코치를 덮친 정체
코치는 1941년 칸 부부의 창업부터 탁월한 장인의 힘, 보니 카신의 디자인, 루 프랭크포트의 비즈니스 센스로 일관되게 성장해 왔습니다.그러나 그런 코치가 정체되기 시작한 것이 1990년대 중반 정도부터입니다. 1995년 회장 겸 CEO로 취임했던 르 프랑크포트는 그 원인을 분석해 하나의 결론에 도달했습니다.

바로 요즘 유럽에서는 프라다 나일론 백을 비롯해 캐주얼한 백이 대히트를 치기 시작했고 핸드백이 비즈니스 아이템에서 패션 스타일링 코디 아이템으로 변해가는 시대였습니다.
새로운 디자이너를 통한 디자인 쇄신
여기서 새로운 모험을 떠났어요. 좀 더 현대적인 감각을 찾아 코치 디자인의 탑 이그제큐티브 디렉터로서 약간 32세의 리드 크라코프를 맞이하기로 한 것입니다.
기존의 가죽을 사용한 중후하고 클래식한 컬렉션에서 컨템포러리한 디자인으로 전환을 꾀했습니다. 그리고 1998년에는 워치라인, 1999년에는 신발 컬렉션을 시작하고 동시에 웹사이트 해설도 실시했습니다.
2000년에는 뉴욕에서 자동차로 2시간 거리에 있는 고급 별장지 햄프턴스를 형상화한 햄프턴즈 컬렉션을 발표해 가방뿐 아니라 웨어와 모자, 신발, 소품을 포함한 토탈 코디 컬렉션을 선보였습니다.
리드 크라코프가 취임한 지 불과 5년 만에 코치는 완전히 클래식 백 브랜드에서 컨템포러리 패션 브랜드로 변모한 것입니다.
코치 얼굴 시그니처 탄생
2001년은 바로 코치에게 있어 최대의 발견과 진화의 해가 되었습니다. 지금은 코치의 대명사이기도 한 COACH의 머리글자"C"를 로고를 모노그램으로 캔버스에 짜넣은 시그니처 컬렉션이 발표된 것입니다.
이러한 압도적인 제품 전개의 빠르기는, 특필할 만한 것이 있어 제품을 기획하고 나서 매장에 줄을 설 때까지 불과 12개월이라고 하는 경이로운 스피드입니다.
65주년을 기념한 레거시 컬렉션
2006년에는 창업으로부터 65주년을 맞이해 이것을 기념해 레거시·컬렉션을 발표했습니다. 초대 디자이너 보니 카신 시절 만들어진 상징적인 스트라이프와 놋쇠 하드웨어와 넉넉한 눈 밖 포켓 등 코치의 전통적인 디테일을 재현해 당시를 방불케 하는 럭셔리한 가죽을 사용한 컬렉션입니다.
코치가 목표로 하는 제3의 시장
코치는 1941년 미국에서 창업했고 1988년 일본에 진출했기 때문에 세계적으로 전개되고 있는 글로벌 브랜드라고 생각하는 분들도 많겠지만 사실 비교적 한정된 시장에서만 활동하고 있는 것입니다.
루 프랭크포트는 중국이 앞으로 매우 중요한 시장이 될 것으로 보고 있었습니다.
2008년 홍콩에 플래그십 가게를 오픈하여 아시아의 기반으로 삼았습니다. 아시아 전역에서 많은 관광객이 방문하는 홍콩에서 노출도를 향상시킴으로써 아시아에서의 점유율 확대를 목표로 한 것입니다. 이렇게 중국이 제3의 시장으로 삼을 준비가 된 것입니다.
새로운 크리에이티브 디렉터 탄생
코치는 2013년에 새로운 전기를 맞이합니다. 오랜 세월 코치인 이그제큐티브·크리에이티브·디렉터를 맡아 프레지던트이기도 했던 리드·크래코프가 퇴임한 것입니다.
럭셔리 브랜드로 디자이너 교체는 따르기 마련이며 디자이너가 바뀌면서 브랜드 가치가 크게 변동됩니다. 샤넬이 코코 샤넬 망후 칼 라거펠드의 기용으로 대성공했듯이 구찌가 톰 포드의 기용으로 불사조처럼 되살아났듯이 럭셔리 브랜드에 디자이너의 가치라는 것은 매우 큽니다.
하지만 걱정 없어요. 리드 크래코프의 후임으로 멀버리, 로에베 크리에이티브 디렉터였던 스튜어트 비버스를 뽑았습니다. 캘빈 클라인, 보테가 베네타, 지방시를 거쳐 마크 제이콥스 아래에서 루이비통의 액세서리도 담당했을 정도의 디자이너입니다.
유럽의 메종에서 경험을 쌓은 비버스가 코치를 보다 모드에서 패셔너블한 브랜드로 진화시켜 나갈 것입니다.
기업으로서의 코치
코치라는 브랜드는 브랜드라기보다는 바로 기업이라는 것이 정확하다고 생각합니다. 그 비즈니스 모델, 마케팅 능력은 매우 뛰어나고 다양한 전략을 구사하여 우리에게 코치의 훌륭함을 전해줍니다.지금이야말로 코치라고 들으면, 금방 뭔가의 이미지가 떠오르겠지만, 여기에 이르기까지는 여러가지 대처를 실시해 코치라는 브랜드를 침투시켜 왔습니다.
액세서블 럭셔리라는 컨셉
코치의 최대의 특징으로는, 액세스·럭셔리(손이 닿는 고급품)라고 하는 컨셉을 들 수 있습니다. 원래 탁월한 장인의 손에 의해 모두 손으로 만든 고급 가죽 제품을 취급하던 브랜드에서 보다 현대적인 브랜드로 진화한 것이 2000년 전후입니다.
하지만 결코 싸구려가 아니라는 소비자가 조금만 손을 뻗으면 거기에 손이 닿을 수 있는 절묘한 포지션을 만들어냈습니다.
럭셔리 아이템 전부를 COACH로
전개하는 컬렉션도 해마다 확대를 계속해 왔습니다. 코치 창업 시에는 가죽 제품만을 취급하고 지금과 같은 캔버스나 나일론 소재 가방은 물론 없었고, 가방 이외의 컬렉션도 대부분이 가죽 상품이라고 부르는 소품류뿐이었습니다.
1992년 아이터웨어를 시작으로 1998년 라이선스 계약에 따라 워치라인 시작, 이듬해 슈즈컬렉션으로 점점 그 라인업을 넓혀왔습니다.
2000년 고비에는 햄프턴즈 컬렉션으로 머리부터 발끝까지의 토탈 코디 컬렉션을 발표하며 라이프스타일을 제안하는 패션 브랜드로 나아갑니다.
심지어 2006년 쥬얼리 컬렉션, 2007년 프레그런스 컬렉션과 코치만으로 모든 것이 갖춰져 모든 럭셔리 아이템을 접근시킨 것입니다.
놀라움과 감동으로 제압하는 마케팅
마케팅의 대단함도 코치의 특징 중 하나입니다. 2003년 시부야의 플래그십 가게 오픈에서는 거리에 꽃무늬 코치의 광고가 넘쳐나고, 컬러풀한 코스튬에 싸인 외국인 모델이 거리 사람들에게 웃는 얼굴로 꽃을 건네는 충격적인 것이었습니다.
교묘한 마케팅 전략에 의해서 항상 사람들에게 상상을 초월한 놀라움과 감동을 줌으로써 코치를 강하게 사람들의 마음에 각인시키고 있는 것입니다.
여러분이 알고 있는 코치라는 것은 정말 21세기에 들어서부터입니다. 2000년에 들어와 불과 10년 정도 사이에 지금의 코치의 초석이 되는 액세스·럭셔리 브랜드로서의 지위를 확립했습니다.
코치의 훌륭한 비즈니스 모델과 새로운 컬렉션을 가지고 있다면 향후 럭셔리 마켓에서 더 높은 곳으로 올라갈 가능성은 충분히 있을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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