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루이비통[Louis Vuitton] 역사와 현재 이야기

by Re.V B.STORY

루이비통 로고

루이비통의 화려한 역사

루이비통의 역사는 꽤 오래된 1854년까지 거슬러 올라갑니다. 루이비통의 창업자는 이름 그대로 루이비통이라는 사람인데, 프랑스와 스위스의 국경 근처에 있는 쥐라 지방 앙셰이 마을에서 12형제의 딱 중간으로 태어나게 됩니다.
 
장인으로서의 커리어를 시작한 그였지만 14세 때 어머니와의 사이가 틀어져 가출이나 다름없이 집을 뛰쳐나와 꽃의 도시로 불리던 파리로 뛰어들게 된 거죠. 파리에서 한 트렁크 제조공의 견습이 됩니다. 이 시대는 아직 치마를 철사로 펼치는 시대이므로 귀족들이 여행갈 때 트렁크는 필수 아이템이라는 시대였습니다.

이 장인의 원래 루이비통은 유례없는 재능을 발휘해, 프랑스 황실의 주문을 받는 듯한 프랑스에서도 굴지의 장인으로 계단을 뛰어오른 것입니다.

그리고 1854년 33세 때 독립해 파리의 고급 부텍가에 트렁크 전문점을 마련했는데, 이것이 현재의 루이비통의 발상이 되었습니다.

비통을 유명하게 만든 납작한 트렁크

당시에는 뚜껑이 둥근 트렁크가 일반적이었습니다. 이는 마차가 주요 이동수단이었던 당시 프랑스에서는 비가 내릴 때 트렁크의 물이 아래로 떨어지기 쉽다는 구조상의 이유로 선호되었던 것입니다.
루이비통 트렁크
그리고 루이비통에서도 예외 없이 이 둥근 뚜껑 트렁크를 만들어 냈는데, 그곳은 프랑스 최고의 장인에까지 오른 남자는 역시 기관차와 배 등 향후 이동수단의 발달을 생각한 끝에 '뚜껑의 평평한 트렁크'를 생각해냈습니다.

그리고 이 뚜껑의 평평한 트렁크에는 여러 가지 궁리가 박혀 있었습니다. 우선 그 소재입니다만, 휴대하기 편리한 가벼움을 생각하여 가죽보다 가벼운 무지의 코튼을 선택했습니다.

그리고 거기에 방수가공된 '글리 트리아논'을 개발하여 가볍고 튼튼하며 방수가 가능한 획기적인 트렁크를 만들어냈습니다. 이러한 지금까지 없는 트렁크는 금세 당시의 부유성의 사이에 평판이 되어, 루이비통의 이름을 일약 유명하게 했습니다.

프랑스에서 세계로 뻗어나가다

순식간에 높은 평판이 퍼진 비통의 트렁크는 프랑스뿐만 아니라 해외에서도 주문이 쇄도해 전혀 수요를 따라잡을 수 없게 되었습니다.
거기서 1859년에는 아니에르=슐=센에 신공장을 오픈해, 증산 체제에 들어가지만 아직 창업으로부터 불과 5년 밖에 지나지 않았다는 것은 정말로 놀랍습니다. 이 아니엘의 공장은 현재도 가동하고 있어, 트렁크나 스페셜 오더 같은 장인의 솜씨가 가장 필요한 제품을 제조하는 공장으로서 높은 가치를 계속 낳고 있습니다.

스테디셀러 모노그램

1896년에 발표된 [모노그램]의 영감이 된 것은 일본의 가문입니다. 당시 가짜에 시달리던 루이비통은 이 일본의 가문을 모티브로 한 LV마크와 별과 꽃무늬라는 복잡한 패턴으로 가짜에 대항했습니다.
루이비통 모노그램
처음에는 현재와 같은 인쇄물이 아니라 장인의 손으로 직접 그렸습니다. 이러한 가짜에 대해 철저하게 항전하는 자세와 장인들의 끊임없는 노력으로 서서히 가짜를 구축했던 것입니다.

사실 1888년에 발표된 '토알 다미에도' 역시 일본의 얼룩무늬를 모티브로 디자인되어 비통과 일본은 1800년대부터 깊은 관계를 맺고 있었습니다.
 

거대 브랜드로 도약

1900년대에 들어서자 조르주는 미국에 적극적으로 판매를 개시합니다. 그리고 각국의 만국박람회, 전시회, 견본 등에 정력적으로 전시를 계속해 국제적인 지명도를 높여갑니다. 요즘 각종 신작 트렁크가 출시되고 있고, 바다에 빠져도 가라앉지 않는 트렁크 등도 발표되고 있었는데 영화로 유명한 '타이타닉'호가 침몰하면서 비톤의 트렁크에 잡혀 목숨을 건진 사람도 있었다고 합니다.
루이비통 매장
그리고 큰 전환점은 3대째 가스톤 비톤이 1959년에 이집트 면에 염화비닐 수지를 가공한 토알 땅의 「모노그램·캔버스」를 발표했던 것입니다. 이 새로운 소재에 의해서, 그 후의 신제품 개발의 스피드가 비약적으로 증가해, 현재도 인기의 스피디나 키폴이 탄생하고 있습니다.

마크 제이콥스

1997년에는 본격적으로 패션업계에 진출하기 위해서 아티스틱 디렉터에 마크 제이콥스를 맞이해 프레타포르테와 슈즈의 컬렉션을 발표합니다. 사실 이런 가방을 주로 만들던 비통과 같은 브랜드가 패션업계에 본격적으로 진출하는 것은 당시에는 아직 이례적인 일로 패션업계의 국경 없는 변화를 낳는 계기가 되기도 했습니다.

마크 제이콥스의 전략은 비튼에게 혁신을 가져다 줄 거예요. '다미에'가 스테디셀러 상품으로 부활되어 2002년에는 첫 워치 콜렉션 '덤불'의 발표, 2004년에는 쥬얼리 콜렉션 '앰플리즈'도 발표했습니다.

마크 제이콥스가 발표한 베르니 등은 지금까지의 비통의 이미지를 쇄신시키는 에나멜을 사용하거나 데님 원단을 사용하는 등 어쨌든 혁신적이었습니다.

이러한 마크제이콥스의 전략에 의하여 전통적인 가방 브랜드로서 자부심을 남기면서도 종합 패션 브랜드로서 탈피하였습니다.

루이비통 컨셉

루이비통의 컨셉으로 거론되고 있는 것은 '여행'입니다. 이 컨셉은, 창시자인 루이가 여행용 트렁크 전문 아틀리에를 창업한 1894년경, 이동 수단이 마차에서 철도로 이행하는 시대이며, 보다 트렁크의 수요가 높아지고 있던 것도 관계하고 있습니다. 루이의 아들인 조르쥬가 Le voyage라는 트렁크에 관한 에세이를 출판했을 정도에요.

책을 사용해 루이비통의 컨셉을 침투시킬 수 있던 것으로, 브랜드 가치를 높이는 결과가 되었습니다. 이것은, 창업했을 당시부터 트렁크 케이스에 기원으로 철저하게 관철되고 있는 것입니다. 여행과 루이비통은 뗄래야 뗄 수 없는 관계라고 말할 수 있겠지요.
 

역대 루이비통 디자이너

사실 루이비통이 디자이너를 영입하기 시작한 것은 프레타포르테 컬렉션에 본격적으로 뛰어든 1997년부터입니다. 지금부터는 역대 루이비통 디자이너들에 대해 해설해보겠습니다.

마크 제이콥스 / 1997~2013

스테디셀러인 '베르니 라인'을 탄생시켰고, 에나멜·데님·퍼등의 소재로 작품을 발표해 화제를 모았습니다. 이러한 공적은, 루이비통을 한층 더 일류 브랜드로서 끌어올렸다는 평가를 받고 있습니다.

폴 엘버스 / 2006~2011

마크 제이콥스 밑에서 5년간 폴 엘버스가 MENS 디렉터를 맡고 있어요. 또, 발표한 「모노그램·마카서」는 현재는 MENS의 스테디셀러 라인이 되었습니다.

킴 존스 / 2011〜2018

마사이 테마의 「다미에마사이첵」은, 지금도 인상적인 작품으로 사랑받고 있습니다. 또, 「슈프림」이나 「Fragment」와의 코라보레이션도 성공시켜, 지금까지의 루이비통의 이미지를 바꾸는 사건이 되었습니다.

니콜라 제스키에르 / 2013~

15년 동안 발렌시아가 디자이너직을 사임한 후에 취임했어요. 파이널 판타지와의 콜라보레이션도 성공시키고 있어 일본과의 관계도 깊어지고 있습니다.

버질 아브로 / 2018~

스트리트와 럭셔리를 겸비한 디자인이 평판을 불러, 지금까지 없었던 전위적이고 버라이어티가 풍부한 아이템을 많이 발표하고 있습니다. 현재의 패션 업계에는 빠뜨릴 수 없는 일류 디자이너로서 평가가 높은 존재입니다.

독주라고 할 수 있는 압도적인 브랜드력

루이비통은 말할 것도 없이 알려진 세계 최고의 패션 브랜드입니다. 모노그램이나 다미에와 같은 인기있는 디자인은 아마 거리를 걷다 보면 자주 보게 되고, 이름을 몰라도 그 디자인은 눈에 띄었을 것입니다.
루이비통 가방
루이뷔통이라는 것은 LVMH(모에헤네시루이뷔통)라는 그룹사 중 한 브랜드가 되는데, 이 단체 1 브랜드 매출액도 1500억엔이 넘는 규모로, 해에 따라 다소 증감이 있지만 에르메스나 구찌, 샤넬 등 다른 럭셔리 브랜드의 배 이상의 매출이라는 압도적인 인기를 자랑하고 있습니다.

참고로 LVMH 그룹 중에는 펜디, 셀린, 로에베, 마크제이콥스, 크리스찬 디올, 불가리 같은 브랜드도 이름을 올리고 있는 초거대 그룹으로 이외에도 태그호이어나, 제니스, 우브로 같은 고급 손목시계 브랜드, 모에 샹동, 돈페리니옹 같은 초고급 와인 브랜드도 참여하고 있는 패션업계의 거인입니다. 2021년에는, 루이·비통 최초의 흑인 크리에이티브·디렉터가 된 버질·어브로가 이끄는 Off-White(오프화이트)도 산하에 넣고 있습니다. 그 중에서도 주력 브랜드로서 관중의 하나가 되고 있는 비톤이라는 것이 얼마나 대단한가 하는 것을 알 수 있을 것입니다.

역사와 브랜드력 비통의 매력

루이비통이라는 것은 매우 역사가 깊은 브랜드이기도 하고 압도적인 브랜드력이 있다는 것은 말씀드린 대로입니다. 그러나 그 브랜드력이나 역사에 좌초하고 있는 것만으로도 아닙니다. 시대의 흐름에 맞춘 혁신성이라는 점을 봐도 역시 루이비통이라는 브랜드는 뛰어난 감각을 가지고 있습니다.
루이비통 가방
비통이라고 하면 모노그램이나 다미에 등의 이미지가 매우 강하지만 새로운 스테디셀러로 자리잡은 베르니는 1997년에 아티스틱 디렉터로 취임한 마크 제이콥스가 만들어낸 것이고, 이후에도 여성은 니코라 제스키에일, 남성은 슈프림과의 협업으로 일대 센세이션을 일으킨 김정스에서 스트리트 장면에서는 압도적인 인기를 자랑하는 오프화이트 디자이너 버질 애브로를 크리에이티브 디렉터로 불러들이는 등 다른 브랜드에 앞서 트렌드를 창출해 나가고 있습니다.

이러한 항상 새로운 바람을 받아들여 브랜드를 활성화시킴으로써 최첨단 브랜드로서의 루이비통이 완성되고 있는 것입니다.

엄청난 인기의 비밀은

왜 이렇게 루이뷔통이라고 하는 것은 인기가 있는 것일까요? 루이뷔통이라는 브랜드는 실로 마케팅을 잘하고, 다양한 전략을 세밀하게 펼치고 있습니다.

흔히 마케팅의 4P 전략(Product 프로덕트, Price 가격, Place(유통), Promotion(판매 촉진)이라고 하는 것이 이야기됩니다만, 루이비통은 이 4개의 P에 대해서 실로 훌륭한 대응을 실시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Product 프로덕트는 말하자면 장인의 물건

제품에 관해서는 통상, 물건을 만든다는 것을 생각할 때에 장인이 만드는 한 점이라면 납득이 갈 때까지 끝까지 고집한 작품을 만들어 낼 것입니다.
루이비통 장인
그러나 브랜드 제품과 같은 대량생산, 대량판매를 전망한 이른바 공업디자인 분야에 관해서는 일정 이상의 품질을 충족하는 것을 만드는 것이 중요하며 과도한 품질에 대한 고집은 제조비용의 급등으로 이어지기 때문에 좋다고 볼 수 없습니다.

그러나 비튼의 사고방식은 바로 장인이 작품을 만드는 것처럼 '절대적인 품질'이라는 것을 염두에 두고 만들어졌으며 창업시절부터 그 생각이라는 것은 맥맥이 이어져 오고 있습니다. 그래서 비통의 아이템은 매우 튼튼하고 오래 지속되는 고품질의 제품이 만들어집니다.

Price 가격이 아닌 가치

가격이라는 것은 일반적으로는 싼 것을 선호합니다. 브랜드 것에 한해서 말하면 상태라는 시각이 들어가기 때문에 단순히 싼 것이 좋은 것이 아니라 어느 정도의 가격이 아니면 반대로 의미가 없을 수도 있습니다.
루이비통 가격
가격에 관한 비톤의 본연의 자세는, 가격이 아니라 그 가치에 주목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가치라는 것이 가격이 되는 이상은 다른 경합과의 상대적인 가격이 아니라 루이비통의 제품으로서의 절대적 가치에 의해 가격이 결정되어 갑니다.

가치가 높은 것이라면 그만큼 가격에도 반영된다는 매우 간단한 생각입니다. 그러나, 상태를 파악하는 셀럽의 입장에서 보면, 이 가치와 가격의 균형이 잡혀 있는 것이 역시 인기로 이어지고 있는 것입니다.

Place 유통을 지배

물건을 판다는 것을 생각하면 보통은 백화점, 숍, 넷숍, 양판점 등 다양한 유통 채널을 사용해 판매를 생각하는 것이 보통입니다. 루이뷔통으로 말하면 이 생각은 들어맞지 않습니다.
루이비통 place
직영 숍이나 백화점 등 비톤의 눈이 닿는 범위가 제한된 공간에서만 판매함으로써 브랜드 가치를 높이고 있는 것입니다.

안이한 저가 판매나 신뢰할 수 없는 장소에서는 판매하지 않음으로써 비톤의 제품에 대한 신뢰감과 안도감을 주고 있으며, 또한 그 장소 자체도 선택된 장소로 만들어 상태를 확보하고 있다고 할 수 있습니다.

Promotion 판매 촉진은 이미지 창출뿐

상품 프로모션 활동에서 가장 먼저 떠오르는 것은 TV CF가 아닐까요? 근데 루이뷔통 TV 광고는 본 적이 없는 것 같지 않아요? 맞아요, 뷔통은 광고를 안 해요.대신 잡지나 신문에 대한 광고는 내고 있습니다.
루이비통 프로모션
하지만 그 중에서도 물건을 팔기 위한 광고라기보다는 비톤이라는 브랜드 이미지를 구축하기 위한 것으로 매우 세련되고 럭셔리한 이미지를 우리에게 심어주는 것입니다. 이렇게 머릿속에 심어진 이미지라는 것이 루이비통이라는 동경을 만들어 발돋움해서라도 갖고 싶다는 생각을 하게 해주는 것입니다.

최근에는 럭셔리 브랜드라도 세컨드 라인이나 저렴한 디퓨전 라인 등을 전개하는 경우도 있지만 루이비통은 그런 일은 일절 하지 않습니다.

또, 많은 브랜드가 실패해 브랜드 이미지를 실추시켜 온 라이센스 제공에 의한 보급등도 지금까지 전혀 하지 않았고, 해외로부터의 병행 수입에서조차 볼 수 없을 것입니다.

이러한 브랜드 이미지를 손상시키는 활동을 실시하지 않는다고 하는 안심감, 그리고 고급인 것이 루이비통의 프로모션의 일환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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